영화 박열 실제와 후기

 

영화 박열 실제와 후기

 

 

영화 박열 - 개새끼 (박열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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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관동대지진 혹은 간토대지진)

 

(영화장면 中 )

 

1923년 9월 일본 도쿄를 포함한 관동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난다 당시 목재 건물 양식이었기 때문에 수만 가구가 불에타거나 갈라진 도로 사이로 매몰되었고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계엄령을 선포하며 사태 수습을 해보지만 화재의 불안함과 공포로 혼란만 커져갔다

 

 

 

(1923년 9월 23일 지진 당시 조선인이 폭동을 조장하고 있다는 내용의 신문)

 

일본은 민중의 시선을 다른곳으로 돌리고자 경찰서나 내무성에 조선인의 방화 우물에 독을탓다는 소문을 낸다 당시 신문사에서는 사실 확인도 없이 내용이 보도되었고 이에 격분한 일본군과 조선인 증오로 모인 자경단 단체는 강제연행 폭행 살인등 조선인 학살로 이어졌다 처음에 모르는 척 했던 경찰들이 자경단의 만행이 도를 넘어 공권력 까지 위협 당하자 뒤늦게 개입하지만 자경단 광기에 많은 조선인들이 학살을 당한 이후였다

 

 

(8.15 다큐특집중 관동 대지진관련 조선인 학살 인터뷰 中)

 

영화를 보면서 실제이야기들을 찾으면서도 일본인은 왜 조선인을 증오하고 무이 분노하게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해답은 다큐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일본사람이 대지진보다 무서웠던건 조선인이라 했다 지진발생전 수천명의 사상자를 낳은 2.8 운동과 3.1 운동 으로 지배권력에 대한 민중의 저항과 권리 찾기운동이 활발하던 시기에 고비를 힘들게 넘겼는데 지진이 났고 조선인이 일본사람을 죽인다 독살한다 등등 소문이 돌았다 밤에 어린이가 울면 조선인이 나타나 죽임을 당할거라고 어른들이 겁을 주었고 그당시 우물이 많았는데 물마시고 독살될까봐 붕어를 넣어 독이있는지 없는지 확인했고 어린 나이에 조선인은 공포에 대상이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요코하마시 미나미구에 있는 한 소학교(초등학교) 에서 아이들이 쓴글을 보면 알 수 있다고한다 조선인을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한 내용을 자세히 서술 되있고 조선인이 공격해온다 라는 거짓 소문에 두려운 마음을 기록한 학생도 있었다 (요코하마 개항 자료관에 가면 자료열람가능) 안타까운건 학살내용에 조선인에 대한 두려움만 써져있을뿐 동정을 담은 내용은 없는게 특징이며 어른들이 거짓말한 사실은 아이들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반성도 없다고 한다

 

왜 일본에 조선인들이 있었고 그렇게 학살을 당해야 했을까??...당시 조선은 일본에게 토지와 식량 약탈이 일상이었고 먹을게없어 겨우 입에 풀칠하는 시대였다 일본에 막노동이라도 하면 밥을 먹을수있다는 소릴듣고 많은 노동자가  일본으로 건너가 거나 공부를 하기위해 일본에 가거나 성공하기위해 일본으로간 조선인도 있었다 그런데 소문과 다르게 일본은 무리한 해외파병으로 군량미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쌀파동으로 이뤄진다 조선인이 많아지자 혼란을틈타 학살이 진행된것이다

 

 

15엔50센 의 비극은 조선인 복장을 하면 바로 살해 당했으며 신분을 숨기기위해 일본식 복장을한 조선인들을 식별하기 위한 방법이 었고 조선인 외에도 중국인 일본인이지만 지방에서 도쿄로 이사했던 일본인... 한국의 사투리처럼 발음 안되거나  어눌한 말투인 경우 조선인으로 착각해 살해되는 경우도 있었다 나이 성별 따지지 않고 살해 되었으며 대부분 매장 되었거나 도쿄의 스미다와와 강과 아라카와강 두강이 흘러다니는 곳에는 시체로 인해 피로 물들었다고 한다

 

일본에 봉숭아회라는 단체가 사죄의 의미로 강주변을 파내 유골발굴 작업을 실행했지만 번번이 실패하였고 주민의 반대로 더이상 작업을 할 수 없었다 학살 이후로 댐의 모습이 바뀌면서 지금은 휴식의 공간으로 남았고 회원들은 그곳에 봉숭아꽃을 심는다고 했다   

 

 

 

 

(자경단이 사용했던 무기들을 압수한 사진 -그 중에는(약간 오른쪽) 화재시 사용하는 물건을 찍고 끌어당겨 사용하는 끌게도 있었다 이걸 사람한테 사용하다니...) 실제 사진과 영화를 보면 자경단이 조선인을 학살할때 쓰던 주된 도구는 칼이나 창인데 왜 총이아닌 손으로 직접 쓰는 도구였을까? 총소리가 들리면 인근 주민에게 공포감이 조성되어 총대신 칼로 쓰라고 명령받았다는 증언이 있다

 

 

 

(자경단/ 어린이들 사이에선 조선인 군인 자경단으로 역할을 맡아 자경단 놀이가 유행이었다다 ) 박열은 비밀결사단 조직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있었고 폭탄 제조와 폭탄을 던지려고했던 이유로 대역죄가 성립되 감옥에 있었다 따지자면 박열은 암살전 미수였다 하지만 자경단 활동은 조선인에 대한 증오와 학살 이건 당연한걸까? 죽창으로 사람을 찌르고 손과발을 묶어 강에던지는등 수많은 사람을 죽였는데도 그에 대한 처벌이 없었다 오히려 고마워 해야한다니 인간의 입에서 나올소린지...실제로 학살을 하던 자경단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로 풀려 나거나 자료상에 자경단원 4명이 잡혀 갔으나 천황의 사면으로 풀려났다 결국 학살 사건으로 법적으로 책임진 사람은 단한명도 없다

 

 

 

나중에 일본경찰이 꾸며낸 사실을 알아냈고 조선일보와 동화일보에 사과문을 작성한 일본인 변호사 후세다츠지가 사과문을 보내고 박열이 공판에서도 변호를 맡았다 변호사는 탄압받고 힘없는 사람들 편에 평생 서겠다라는 신념으로 변호 활동을 한다 일본에서는 변호사 박탈당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많은 독립운동가를 변호하여 2004년 대한민국 정부로 부터 건국 훈장을 수여받는다 그 외에도 나카니시 이노스케 와 사토무라 긴조 일본 소설가도 일본이 민족차별의 죄값을 치를수있게 노력하겠다며 박열을 응원하는 일본 민중도 있었다

 

대놓고 하는 스포지만 박열에 반이상은 감옥에 있던 이야기와 심문 재판 하는 과정을 담고있다 스토리 알면 재미없다고 하지만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연기 와 비록 감옥에 있었어도 알콩달콩 지내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 심문을 하던 조선계 일본사람도 감옥을 관리하던 교도관의 심리변화등 재밌게 볼수있는 포인트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이후 실제와 비교 했을때의 소름이 돋았다면 한번더 보게되는 영화가 아닐까?

 

 

 

 

가네코 후미코 에 걸크러쉬한 매력은 동거할래? 부터 끌렸다 일본인이면서 자신을 아나키스트라 소개한 그녀는 동거녀이자 동지라는 이유로 자발적으로 박열을 따라 감옥에 가는가 하면 감옥중 대담한 이야길 꺼내며 능욕을 당할꺼같으면 역사에 남겨주겠다며 미친척 소리를 지르는등 박열이 농담으로 정신감정은 가네코 후미코가 필요하다고 말 할 정도였다  

 

 

 

박열이 어머니께 보낼 사진이었는데 화제가 되버린 신문기사 담당판사는 해임되고 일본내각이 총사퇴 할 정도로 파장이컸다

 

 

(1927년 1월 가네코 후미코의 죽음을 다룬 신문)

 

역사적 미스테리 가네코 후미코의 죽음이다 죽기전까지 자서전을 썼고 임신했을 가능성이있다 자살이 아니고 타살 일 수 있다는 신문이 돌았다 아직 밝혀 지진 않았지만 이 이야기가 왜 뜬금 없이 영화끝에 나왔는지 몰랐다 생각해 보면 영화 장면중 형무소에서 일본인에게 성에 관한 이야길 농담처럼 하는 장면이 가끔 등장한다 그저 농담인 줄 알았는데...;; 이것이 연관이 있던게 아닐까....

 

 

가네코 후미코는 옥중에서 법을 판결 받을때도 끝까지 종이와 펜을 놓지않았다 그녀가 죽고 자서전은 가즈오가 출판하게된다 영화 보는동안 원고 내용이 궁금했는데 책으로도 나와있어서 읽어볼까한다

 

 

 

(가네코 후미코 옥중 관련 자서전들)

 

 

 

영화를 본 일본인의 반응도 봤는데 ... 타사이트에 댓글들을 보면 조선의 피해자 코스프레 최강 믿을수없는 실화 그것은 허구기 때문이다 헛소리도 정도껏 한국인 박멸 등등 한국 비하 와 역사왜곡 망언들이 쏟아졌다 지난번 역사왜곡 관련 교과서 수정부분인데 일본 교육 위원회 에서  중학교 교재에 조선인 학살이라는 단어를 살해로 바꾸면서 학살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있었다 과거에 있던 일이 없었던일 처럼 또한 조선인 학살에대한 보고서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한 기록이 있어 논란이 되었다 영화 아이캔 스피크 잉글리쉬를 보는 기분 이랄까 ... 일본 사람들이 모두 나쁜건 아닌건 알지만 아직도 일본에가면 여행중 위협을 느낄때가 있다는 이야길 많이 듣는다 일본이 그렇게 당당하면 숨길 필요도없는데...어째서 확인도 안하면서 거짓이라고 할수있는지 영화니까 허구라고 말하고 싶은건지 역사 교과서도 수정되고 있는판에 눈에 보이는것만 진실이라 말하는건지....그거야 말로 허구며 거짓아닌가? 생각해본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사진이 나오는데 1945년 10월 27일 박열 출옥 환영회 사진이 올라온다 차다리 중간중간 실물 사진들을 같이 올렸다면 더 좋았을 거같았는데 여운을 남기위한 마지막 사진 한장이었을 지도 모른다 혹시 눈에  띄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 신문사진과 영화이미지를 자세히보면 장면이든 인물이든 굉장히 닮았다 정말 똑같이 묘사한 기분이 들었는데 기분탓이 아니었다 제작 당시 일본 아사히 신문을 비롯해 모든 일본 신문사에 전화를 돌려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기사가 실린 신문을 받았다는 이준익 감독의 노력이 돋보였던 부분이다 영화 박열은 끝날때까지 지루함없이 재밌게 봤다 영화상에는 22년 2개월 복역끝에 석방되었다는 이야기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1950년 한국전쟁당시 행방 불명 되었다가 북한 평화통일촉진협회 회장으로서 활동하고있고 1974년1월 북한에서 사망하게된다 출옥직후 월북은 자발적인것이 아니로 판단되고 있다고한다 뒤늦게 1989년, 박열에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았고 이후교과서에도 등장하게된다

 

 

영화 하나를 봤을뿐인데 뜻하지 않게 역사공부도 하게되었다 다큐 인터뷰를 보면서 일본사람의 인터뷰와 한국사람의 인터뷰를보면 일본은 역사를 가르치면서 왜곡이라도 해서 덮으려 했지만 한국은 뒤늦게 개편되는 바람에 지진?학살? 이게먼가요?? 라는 반응에 당황스럽기만 하다 영화를 봤다면 기억속에 잊혀지지않고 남길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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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시대적 배경으로 추천할만한 영화가 있다면?...

 

아나키스트

 

 

동주 (이영화는 특이하게 흑백으로 제작되어 그시대에 반영 몰입도가 크다고한다)

 

 

밀정

 

 

 

암살

 

 

 

덕혜옹주 (일본에 천황이 있었다면 한국은 황녀 덕혜옹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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